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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ritical Bastards

오르히카 / 00 본문

WRITE/ANOTHER

오르히카 / 00

찬틀 2017. 1. 13. 13:52






월간 오르히카 제출글 백업 > http://monthlight.tistory.com/category/%EC%B0%BD%EA%B0%84%ED%98%B8/%EC%98%A4%EB%A5%B4%ED%9E%88%EC%B9%B4


* 희망의 등불 이전


* 남우라 모험가입니다






  ??



  발 끝이 얼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딱히 양을 세러 온 것은 아니었는데. 핏물이 잔뜩 배어나와 눈이 녹는다. 그 자리서 검은 털거죽을 벗겨내고 살을 발라낸다. 손이 얼으니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었다. 숨 하나에도 서리가 잔뜩 끼어 시야까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여기까지만 해야하나. 아까 삐끗하니 마녀의 비탈에 굴러 떨어질 뻔 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가엾고 순진한 눈망울에 들이받는 솜씨 하나는 일품인 커르다스의 양들도 달이 뜨고 영업시간 지났으니 문 닫고 다들 들어간 듯 한데 잠들지 못한 용 몇마리만 없어진 양들을 세러 나왔는지 끼익거렸다.


  언덕 아래로는 용머리 전진기지가 보이고, 저 멀리로는 흐릿하게 이슈가르드의 윤곽이 보였다. 그는 이슈가르드가 좋지 않다. 하얗게 서리가 얼기 시작한 이래로는 가본 적도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커르다스는 좀 더 친절한 구석이 있는 녹색의 평원이었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절뚝이며 용머리 전진기지를 향한다.





  커르다스 중앙고지에 한차례 눈이 펑펑 쏟아졌다. 흔한 일도 아니고,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적어도 한 차례 이 땅을 불태우고 지나갔던 재해 이후로는 간혹 있는 일이었다. 그 눈들은 푸르던 곳을 하얗게 바꿔버렸고. 세상 일은 정말 모르는거야. 밤새 또 내린 눈을 치우던 장병이 중얼거린다. 바닥이 보일때까지. 이 눈들을 전부 밖으로 들어내고 적어도 사람이 다닐만한 곳이 될때까지. 꽤 많은 눈이 내렸으니 고된 일이었다. 다행인 점 하나는 용머리 전진기지는 모험가들에게 개방된 곳이며, 때로 묵고 가는 이들도 있으며, 그들도 이 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눈을 치우는 작업을 도와야했다는 점이다.


  물론 때로 도움이 되지 않는 모험가도 있었다. 그저 치워주기만을 기다리는 모험가라던가. 근처 눈을 치우던 와중에 꽁꽁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되는 모험가라던가.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근처까지 왔으나 심한 눈발에 앞도 보이지 않아 결국 근처까지 와서 스러져버리는 것이다. 어디서 왔을지도 모르는 모험가의 신원을 찾아내는 것도 일이다. 장병들은 때론 그런 시신을 모른체 다른 치운 눈더미 아래에 두기도 했다.


  아마 오르슈팡이 그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도 눈더미 아래의 시신중 한 구가 되어있을 터였다. 조금이나마 날이 맑고 따듯한 때에 녹은 눈 아래서 썩어가고 있었을테지. 야만신 이프리트와 타이탄을, 또 가루다며 제국군까지 물린 빛의 전사의 최후로는 너무 초라했을터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던 그는 꽤 초라했다. 쫓기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들었다. 그 때엔 몰랐지만. 추레하고 너덜너덜해진 옷을 뒤집어쓰고 눈에 잔뜩 젖어서 온 모험가였다. 그래도 몸이 좋다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 오르슈팡은 그 때를 떠올린다. 슬적 보인 눈매은 또 형형했고 묵묵했다.


  "몸은 괜찮은가?"


  "전혀."


  "그것 참 마음아픈 일이군. 먹을 걸 가져다 줄테니 먹고 좀 더 쉬게."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지?"


  "그건 모르지. 우리가 자네를 발견했을 땐 이미 누워있었으니까 말이네."


  여전히 모험가는 자꾸만 얼굴을 가리려 했다. 얼굴이라던가, 그 커다란 뿔이라던가. 비늘이 난 자리라던가. 한 손으로라도. 어디서 기인한 버릇인지 알 것 같아 오르슈팡은 그의 손을 잡는다. 살짝 눈살이 찌푸러진다. 눈을 마주하는 일이 없었다.


  "농담하지 말고."


  "정말인데."


  "그럼 발견하고 얼마나 지났지."


  "…꼭 그 정보가 필요한가?"


  "응."


  "어째서?"


  이런걸 물어보는 게 불만인 듯 바라본다. 그 때 즈음이면 모험가는 괜히 용머리 전진기지를 택했노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어차피 북쪽에서 왔으니 다른 선택지도 없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르슈팡은 꽤 고집있는 사내다. 그러니 그런 말투를 여태껏 고수하고 있었겠지. 모험가는 이마를 짚는다.


  "어차피 의뢰 때문이지 않나? 밖은 아직도 눈이 잔뜩 쌓였네. 어느정도 녹을때까진 기다려야할거야. 더군다나 그 다리로 나갈 생각은 하도 말고. 맹우여, 네 육체가 아무리 아름답고 단단하더라 하더라도, 쉬어가야할 때는 있어."


  "알았으니까 은근슬쩍 들이대진 말아."


  "역시! 맹우의 눈은 예리하기까지 하군! 자, 그러니 오늘은 둘이서 방 안에서 오붓하게 어떤…!"


  "병사들은 일시키고 혼자 노닥거리시겠다? 좀 양심불량인거 아니야?"


  "워, 원래 관리직이란 그럴때도 있는거네!"


  "그거 진심이야?"


  "…알았네. 그러면 제설 작업이 끝난 뒤에라도…!"


  "집요하네 정말. 그땐 나도 돌아가야지."


  쌓인 눈을 치울 때 즈음이면 다리가 나을까. 모험가가 발을 든다. 살짝 삐끗한거가지고 호들갑을 떨어두었네. 칭칭 동여매어 고정시켜둔 것을 손가락으로 톡톡 만져보다 오만상이다. 으.


  "…그리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바빠야하는거 아니냐고."


  "밤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네!"


  "밤에는 잘거야."


  "맹우여… 그럼 옆에서 나도…!"


  "좀."

  영 떫은 얼굴로 밀어낸다. 하하. 농담이네. 사실 진심이 이만큼 많이 담긴 것 같지만. 모험가가 살풋 웃는다. 눈매가 살살 휘어진다. 그렇다면야 진짜 먹을 거라도 가져다 주어야지. 누워있을 동안 배를 곯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속이 받을만한 것을 잔뜩 준비해다가. 어차피 조리는 오르슈팡이 하지 않을 테지만.



  모험가는 오르슈팡이 문을 닫고 사라지는것을 모험가는 죽 본다. 다리는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으. 아까 제발저린 것이 그저 엄살은 아니었다. 큰일이네. 가겠다고 오르슈팡한테 큰소리 뻥뻥 치긴 했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여기에 머물어야 할 듯 했다. 모험가는 몸을 확 뒤로 제껴 눕는다. 이번 임무는 망했어. 겨우 양털 좀 얻어오는거에 불과하건만 세상만사 언제나 도움이 되는 일이 없었다. 삐끗한게 아니라 들이 받힌거다. 뿔에 그렇게까지 정통으로 들이받혔는지도 몰랐다. 정신이 없었던거다. 모험가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진정시킨다. 그래. 최근엔 또 바빴으니까.


  야만신에 야만신에 또 다시 야만신. 이 세상엔 무슨 야만신을 밭에 씨뿌려서 얻어내는지 하나 없애면 또 하나 나오고 둘 나오고 셋 나오고 세상은 구해야한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거창한 일이 되어버렸는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 모르겠다. 이불을 뒤집어 쓴다. 오르슈팡이 올때마다 늘상 말했던것마냥 조금은 마음을 놓고 푹 쉬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절대 그렇게 될 일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창 밖은 또 밤이다. 아직도 밝았다. 불을 밝힌 데에 싸라기눈이 흩날리는게 보였다. 장병들이 투덜대는 소리. 아, 또 눈이야. 지긋지긋해라. 모험가는 이불을 좀 더 머리 위까지 올려 덮는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모험가는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맹우여, 자는가!"


  "…."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 목소리는 언제나 지나치게 힘차다. 모험가는 이불을 아주 조금 내린다. 오, 아직인가! 그래. 자네의 그 훌륭한 몸을 위해서라도 밥은 먹고 자게! 이불을 걷길래 슬금슬금 일어나보니 큼지막하니 실은 바가지가 아닐까 싶은 대접 한가득 진득한 스튜라. 모험가는 얼떨떨하게 받아든다. 모험가가 그들보다 작은 건 결코 아닌데도 수저 크기는 또 왜이렇게 큰건데. 모험가가 오르슈팡을 돌아본다.


  "이걸 다 먹으라고?"


  오르슈팡이 고개를 끄덕인다. 웃는 낮짝 하며. 단순하니 늘 육체미만 외치는 사내 치고는 어딘가 능글맞고 음흉해보일 때가 진짜 그가 아닌가. 모험가는 늘 의심한다. 사람 좋은 웃음은 더욱 의심스럽다.


  "그럼!"


  "이게 숟가락?"


  오르슈팡이 고개를 끄덕인다.


  "국자 아니고?"


  "물론!"


  "저기, 난 루가딘이 아닌데."


  "알고있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웃는 낯엔 져줄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숟가락만은 정상적인걸 줘. 그런 모양새를 보다 오르슈팡은 급히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릇을 뺏아든다. 숟가락 한가득 퍼담고는 모험가를 바라본다. 자, 아 하게. 아―. 져줄수밖에 없다는건 취소. 모험가는 그의 양 볼을 꾸욱 쥐어 비튼다. 코랑티오가 봤다면 일이 복잡해지겠지마는 지금 그는 여기 없으니까. 잡힌 채로도 오르슈팡이 웃었다. 아, 정말이지. 기어코 모험가도, 소리내어 웃고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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